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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괘장 & 중국검술 입문 세미나

팔괘장 & 검술 입문 세미나


(신청: https://goo.gl/UMnqIS)
1. 대상: ⓵ 누구나
⓶ 팔괘장과 중국무술, 근접전, 중국검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
⓷ 초보자도 상관없음
2. 일시: 2017년 5월 14일 오후 2시부터 6시
3. 비용: 6만원
4. 장소: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천보채 무술 훈련장 (상세 장소는 신청자에 한해 추후공지)
5. 복장: 운동에 적합한 복장(운동복,운동화, 수건)
* 탈의실 있음. 샤워실/수도 없음
6. 서울팔괘장연구회 주관 세미나입니다.
* 팔괘장은 양식팔괘장, 참장은 대성권식, 단전공은 심의육합권 스타일입니다.
* 검술은 팔괘장 검술이 아니라 중국무술 일반 공통검술입니다.
(신청: https://goo.gl/UMnqIS)

7. 교습내용: 1부 팔괘장
⓵ 주권과 참장, 단전공
⓶ 기본 움직임 (용형과 이묘세수, 탈신화영)
⓷ 팔괘장 팔자팔법, 대련팔식, 단조팔식
⓸ 천장과 벽장을 사용한 첫 수 풀기와 상대방에게 접근하기
⓹ 공간파악 및 회피훈련
⓺ 밀기와 당기기를 사용하는 근접전의 기초 Ⅰ
⓻ 팔꿈치와 과타를 사용하는 근접전의 기초 Ⅱ
⓼ 팔괘장 및 중국무술 절초 8개
2부 검술
⓵ 검술은 기초 입문 부분 맛보기입니다.
⓶ 특정 문파에 관계없이 모든 유파의 공통 기초 검술기본기를 접해 보는 시간입니다.
⓷ 중국검술의 기본 초식은 대개 24가지로 잡기도 하고, 유파에 따라서 30가지가 넘기도 합니다만,
기초 입문의 짧은 시간에서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몸으로 체득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중국검술의 원리를 이해하고 가장 기본적인 기술 몇가지를 체험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면, 장소 찾아오는 안내문과 약도를 보내드립니다.
* 입금순으로 우선 접수합니다.
* 훈련용 목봉을 미리 주문해야 하므로, 신청을 빨리 해 주십시오. 길이 1미터인 목봉으로 훈련할 예정입니다.
* 우천시 환불 혹은 1주일 연기(야외라서 비올 때는 세미나 불가합니다.)

(신청: https://goo.gl/UMnqIS)



무당검법에 대한 小考

개인이 뇌속에서 무술과 무협을 동일시하고 혼동하고 있는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현실과 환타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 이것이 위헌소지가 있거나 중범죄 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혈세인 정부의 자금을 수억원씩 받아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이런 사고를 하고 있다면 문제가 된다.

무협을 현실무술계로 갖고 나와서, 이것들을 찾고 구성하고 인터뷰를 선택하여 편집하여 방송한다면, 무술계는 혼란스러워 질 수밖에 없다.며칠째 연락이 오는 그 작년의 거시기 프로덕션, 올해도 정부자금을 몇억 받았나보다. 이번에는 의천도룡기가 주제라며, 무당파의 무술과 기법, 무기체계에 대해서 전문가 견해를 듣고 싶다고 한다. 소림사와 무당산 무술의 차이와 특징을 말해달란다. 하여, 여러번에 걸쳐서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의천도룡기의 무술을 본적도 체험한 적도 없거니와, 도대체 구양진경과 건곤대나이의 기법과 원리를 내가 무슨수로 답변한단 말인가? 그런거 할 줄 알면, 내가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살고 있겠냐? 당장 내가 명교 교주가 돼서 3보이상은 경공술로 날아다니고 있지 않겠는가?

간단히 설명하자면,

호북성에 무당산은 있으나, 무당파 무술은 없다.
무당산에 무당파 무술은 없으나, 무당검법은 있다.

무당산은 도교 성지여서 도관들이 수십개 있다.
그러나 그 도교 도사들이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무술을 수련하고 있지 않다.
그냥 종교단체 일 뿐이다.
그런데 도교 도사들은 귀신을 쫒기위한 벽사검을 신물로 갖고 다니는데, 대개 복숭아 나무로 만든 것이다. 한국의 무당들이 굿 할때 칼과 청룡도를 쓰는것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흘러다니던 북파 무술들은 흔히 '소림권'이라 불렸고, 검술은 흔히 '무당검법'이라 불렸다.
한국의 (자칭)전통검법들이 고구려와 아무 관계 없지만, 고구려 검술이라고 포장한 것과 다르지 않다.
무당의 이름을 붙이면 뭔가 뽀대나지 않는가? 그래서 그렇게 한 것에 불과하다.

지금도 무당태극검이 유명하다.
무당태극검법은 무당산에서 나온게 아니고, 수십년전에 이천기 노사가 만든 검법인데, 이름만 무당+태극 으로 붙인것이다. 이천기 노사가 무당태극검을 만들기 전에 참고 했으리라 추측되는 '무당검법'은 현재 어떤 모습인지 알기 어려운데, 확실한 것은 그것역시 청말 민국초기 즈음해서 중국에 굴러다니던 흔한 검법중의 한가지 였으리라는 것이다.

검법을 연구할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중국병기술의 4대 무기는 도검곤창이다.

현대인들은 도, 검, 곤, 창은 각각 그 기법이 상이하고 구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완벽한 형태의 검법 일 수록, 현대에 만들어 졌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중국정부가 현대 우슈를 만들면서, 검술만의 고유기법을 추출해서 창편투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대의 검술일 수록 검법과 도법, 곤법, 창법이 혼재해 있기 마련이다.
옛날 검법일수록 검을 들고 운용하는데도 검술이 아니라 곤술이나 창술처럼 쓰는 초식이 더 많다.
이런 현상은 창술이나 곤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옛날 사람들이 검법과 도법, 창법을 엄격하게 구별해 가면서 싸웠겠는가?
적을 만나서 잘 먹히는 기술이 장땡이지.
이런것을 일일이 구별하고 따지는 것이야 말로 현대의 현상이다.

그래서 무당산과 관계없는 무당검법이 중국에 많이 굴러다녔는데, 이런 검법이 과장하고 뻥치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습성과 맞물려서 과대포장되고 전설처럼 발전해 왔다.
이런 무당검법을 시중에서 볼 수 있다고 해서, 무당파 무술이 존재하는 증거가 되는것은 아니다.

특히 무당검법이라 불리는 검법들을 보면 매우 정순한 검술기법들로 구성되어 있는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검술들은 그 역사가 아마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국시대 검법만 해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민국시대에 나온 검술책들을 들여다 보기만 해도 단박에 알 수 있다.

톡까놓고 말해서 청말의 검술은 지금 우리가 무협영화에서 보는 검술과는 매우 상이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존경하는 故우승혜 노사가 창시하신 쌍수검법도 원래 없던것이었다.
산동 당랑권을 하셨던 우승혜 노사가 당랑권의 검법13자결과 달마검법을 조금 변형하여 '만든' 검술이다.
그런데 이 검술이 중국영화에서 이름을 날리자, 지금은 각 무술문파마다 너도 나도 쌍수검법을 만들어 냈고, 지금은 쌍수검법이 없는 문파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쌍수검법은 실전에서 못 쓴다. 이건 화법검술이고 실전성은 별로 없다. 다만 배워두면 몸 놀림과 검리를 익히는데에는 좋다.


정리하자면,

1) 무당검법이라 불리는 검법은 무당의 이름을 가탁한 것이지, 무당산과 관계 없다. 그리고 시중에 흘러다니던 무당검법들은 매우 많다.

2) 날이 양날인 검을 들고 하는 검법은 그 형태가 대부분 비슷하며, 달라지기가 쉽지 않다. 삼재검, 곤오검, 청평검, 순양검을 유의미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검리가 같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뒷받침하는 문헌들도 이미 존재한다.

3) 무당파 무술은 없다.

나의 전통무예 추적기 (2)

- 나의 전통무예 추적기 (2)



故박성권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에 만주에서 태어나셔서, 만주 건국대학을 다니신적이 있고, 해방전에 남한으로 오셨다고 했다. 덕분에 중국어/일본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하셨고, 중국어 일본어 원전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셨다. 남한에서는 경찰관으로 평생 근무하시고 정년퇴직을 하셨고, 퇴임후에는 성동경찰서의 무도지도사범을 역임하셨다. 검도, 태권도, 합기도, 기천, 요가 등등을 하셨다 들었다. 경찰에 입사할때부터 출신이 무도경관이셨던 듯 했다.
이 양반은 부인이 봉제공장 사업을 크게 하셔서 집안이 부유했는데, 경찰관의 봉급은 집에 한번도 안 갖다주고 오롯이 자신의 무술연구를 위해 쓰셨다고, 초상 치른후에 사모님이 말씀해 주셨다. 사모님은 평생 남편이 월급봉투 갖다 주는걸 받아본적이 없노라 하셨다.

박성권 선생님이 경찰에 투신한 이유는, 경찰 정보과 형사를 하면서 경찰정보망을 이용하여 전국의 무술인들을 찾고 접촉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후일 말씀하셨다. 박선생님에게는 전통무술을 찾는 것이 평생의 사업이었던 것이다.
나는 경찰과 인연이 많은가 보다. 우리 할아버지가 6.25때 경찰관 신분으로 전쟁에 나가셨다 들었고, 나의 무술 스승님들도 경찰 출신이 한두명이 아니었으니. 사실 나의 사주에는 경찰/군인이 천직이라 나온다고도 들었다. 내 사주가 경찰인데, 경찰을 안해서 인생이 이렇게 꼬였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검도사부님도 경찰이었다. 대학 졸업후 무도경찰로 경찰에 입사해서, 경찰특공대에도 있었고, 마약수사쪽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다. 후일 언더커버로 일본에서 몇 년간 근무하셨고, 나중에는 某국제기구에 들어가 프랑스 리용에서 반년간 훈련받고 해외 근무지로 배치되셨다. 경찰 여러분들은 리용에 뭐가 있는지 잘 아실 것이다. 그는 십년간의 근무후에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남으셨고, 지금은 국적이 바뀌어 북유럽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잘 사신다 들었다.

나는 나의 검도사부님의 소개로 박성권 선생님을 뵙게 되었는데, 전통무술을 찾아다니는 나의 취미와 인생 황혼기에 젊은 제자 하나 받고 싶었던 박선생님의 Needs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분은 무도경찰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어서, 서로 선후배로 대접하던 사이였다.

(To be continue...)


나의 전통무예 추적기 (1)

- 나의 전통무예 추적기 (1)



어려서 한국 고유의 전통무예를 동경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터. 무술을 하지 않는 사람일 지라도 뭔가 신비한 산중무예가 있지 않을까 꿈꾸었을 것이다. 하물며 무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나도 그랬다.


사실 나는 어려서 꽤나 바보였었기 때문에, 장풍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고, 공중부양도 있다고 생각했고, 먼 옛날 엄청난 문명을 가진 환국문화가 있는줄 알았다. 자꾸 서적과 기사에서 장풍과 공중부양이 있다고 하니까 궁금해서 찾아다니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다들 그렇지 않으셨던가? 단학을 수련한 도사들과 공중부양이 언론기사에 가끔 오르락 내리락 했지만, 이제와서 그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욕할 마음은 없다. 기자는 그 사회의 집단욕구를 대리만족 시켜줄 뿐이니까. 

장편선도소설 ‘丹’이 출판되자마자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 매대에 서서 다 읽어버렸다. 도무지 집까지 갖고 올 수가 없었다. 물론 다 읽고 한권 샀다.

그 책을 보고는 곧바로 봉우 권태훈 선생님을 찾아나섰다. 그때 신생 출판사였던 정신세계사가 세종문화회관 뒤편 어딘가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출판사에 갔더니 편집장이 봉우 선생님의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하도 졸라대니, ‘스카이웨이 올라가는 입구에 한의원’이라고만 알려줬다. 이 단서 하나 쥐고서 효자동/북촌/세검정/정릉 일대를 열흘쯤 걸어다녔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고, 전화번호부를 뒤져야 했던 시절이다. 추운 겨울날 열흘쯤 효자동과 세검정을 헤매고 있는데, 적선동 어딘가 길가의 교통순경이 만수한의원을 찾아가라고 알려줬다. 그 순경은 봉우선생님 소문을 알고 있었던가보다. 알고 봤더니, 봉우선생님의 손자는 나의 사촌형님과 죽마고우였고, 우리 형 장가갈 때 함을 졌을 정도로 친한 분 이셨다. 


어찌어찌 해서 만수한의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봉우선생님 자택의 뒷방에서 단학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건방졌던가 보다. 단학 배우러 왔다면서 관등성명도 안 밝힌다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욕을 먹은후에,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흙탕물에서 큰절을 하고서야 봉우 선생님의 자택안에 들어갈 허락을 받았다. 그때 나의 수련을 돌봐주신 분은 봉우선생님의 제자이셨던 하동인 선생님 이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장풍/축지/비월/공중부양 등등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철썩같이 믿을때였으니, 남이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에게 바보라고 손가락질 해도 괜찮지만, 그때는 나도 얼굴 하얀 스무살이었던 것을 참작해 주시라.

대학다니며 태권도와 검도를 열심히 했다. 아침이면 태권도장 새벽반에 나가 운동했고, 낮에는 학교 검도부 생활을 했고, 저녁에는 헬스클럽에 갔다. 내가 하루에 체육관 세군데 다닌놈이다. 우리 대학은 체육학과가 없어서 전문선수가 없었는데, 내가 유일한 태권도 선수1호 였다. 학생처에서도 개교이래로 태권도 선수등록을 처음 해본다고 했었다.


그때 나의 무술 스승님중의 한분이신 故박성권 선생님을 만났다. (To be continue...)



종로구 청진동 의금부 유적에서 나온 조선칼 유물들

이 무기들은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의금부 자리에서 나온 유물들이다.

이곳에 대형건물들을 세우면서 땅을 팠더니 유물이 쏟아진거다.

이 자리가 의금부였다고 하며, 한켠에는 무기 수리창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총통과 몇가지 다른 유물들,

그리고 칼이 셋, 철퇴가 하나 나와서 전시되었는데,

내가 볼 때는 위에서 세번째 칼은 조선의 칼이 아니었다.


저건 전형적인 일본도의 제식이다.

나는 조선후기에 저런 칼을 만들지 않았을거라고 보고 있다.


첫째, 하바키(동호인)부분이 일본도의 것 이고,

둘째, 칼의 곡선이 일본도 곡선이며,

셋째, 칼의 단면이 육각도로써, 전형적인 일본도 제식의 육각단면을 보여준다.


하바키 부분을 잘 보라.

조선칼의 칼날과 손잡이의 연결부분은 대장간 식칼끼우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데,

세번째 칼은 전형적인 일본도 하바키이다.

조선칼의 동호인 부분은 아래와 같다.


이 칼의 금속성분을 분석하면, 일본섬에서 나오는 사철의 성분이 나올것이라 나는 추측하고 있다. 일본의 칼과 조선의 칼은 금속성분이 다른데다가, 일본도는 접쇠로 만들기 때문에, 부식될때 그 부식의 형태가 상당히 달라진다.


칼날부분이 부서진것은 사용하다가 이빨이 빠진 상태에서 수리가 들어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칼이라는것은 쓰다가 이빨이 빠지면 칼날을 다 갈아내서 또 재생해서 쓰는것이고, 칼 앞부분이 부러지면, 잘라서 짧은 단도를 만들어 쓰곤 했다.


조선의 별운검 같은 칼은 일본도를 오랜 세월동안 대를 물려가면서

칼날을 갈아내고 잘라가며 리모델링해서 쓴 칼의 형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것이 별운검이 꼬챙이처럼 가느다랗고 짧은 이유다.


어쨌던 이 칼들이 조선 의금부에서 발견되었으니,

조선의 유물로 퉁쳐서 포함시킨다 해도 잘못된것은 전혀 없다.

다만 이 칼의 출신이 일본도라는것은 밝혀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참외처럼 생긴 저 철퇴의 유려함을 보라...


보아하니 궁에서 쓰던 의장용 철퇴도 아니고, 뭐 대단한 상급무사가 썼던것도 아닌것 같은데, 그런데도 저런 모양과 제식을 보여주고 있다. 

정말 마음에 드는 무기다.


조선은 역시 철퇴의 나라다.

철퇴로 고려를 폐하고 나라를 세우지 않았던가.

김종서 장군도 철퇴로 때려 죽이지 않았던가.


의금부 자리에서 나온 이 무기들을 보실분은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새로 뚫린 지하통로로 나가서, 지상으로 나가지 말고 지하 아케이드로 들어가자마자 오른편의 올리브영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잘 안보이는곳에 전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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