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이 39년만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와룡공원에서 숙정문을 거쳐 창의문까지 전 구간이 개방되었지만,
아직도 가이드를 따라 다녀야 하고, 허가받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 아쉽다.
창의문에서 와룡공원으로 오는 방향은 계단이 워낙 가파른탓에 올라오기가 조금 힘들고,
와룡공원에서 창의문으로 가는 방향은 북악산 정상에서 창의문까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간다.
오르는것과 내려가는것 중에서 어느것이 힘든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가실 분 들은 잘 생각해서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말바위쉼터 ~ 창의문쉼터 (약 4.3KM) 구간은 널널히 걸어도 약 2시간이 안 걸린다.
자세한 내용과 예약은 여기
북악산 서울성곽 관람예약에서 한다.
중간 중간 가이드가 쉴 시간을 준다. 중간에 식수대나 매점은 없다.
따라서 음료수와 간식거리는 각자 미리 지참해야 한다.
담배는 전혀 피울 수 없으며, 담배와 인화물질 휴대는 금지된다.
와룡공원쪽의 입구는 이렇다. 말바위공원에서 등산이 시작되며, 여기서 입장객 신원확인과 예약확인을 한 후, 번호표 패찰을 나눠준다. 앞에는 가이드가 서고, 맨 뒤에는 사복으로 위장(!)한 군인애들이 두명 따라오며 사람들 몰이를 한다.
와룡공원에 가는 법은 안국역 2번출구에 나오면, 바로 앞에 던킨도너츠와
Boss룸살롱 횟집이 있고, 그 앞에서 마을버스 2번을 탄다. 마을버스 종점은 성균관대 후문인데, 성대 후문 수위실에서 내려야 한다. 안 내리면 버스는 학교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내려서 오르막쪽으로 조금 올라가서, 첫번째 보이는 작은 터널위로 가야 말바위쉼터가 나온다. 이정표 없으니까, 길 잃는 사람도 속출한다.
와룡공원에 가는
좀더 힘든 또 다른 방법은, 전철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서, 경신고등학교 정문앞까지 10분정도 걸어간다. 경신고 정문을 지나 100미터쯤 가면, 오른편에 원조 왕돈까스집이 2개 있고, 왼편에 산으로 올라가는 성벽길이 이정표와 함께 보인다. 성벽따라서 한동안 걸어 올라가면 와룡공원에 닿는다. 여기서 말바위 쉼터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면 된다.
야밤에 데이트 코스 산책코스로는 아주 좋은 곳이다.
말바위 쉼터에서 본 삼청각. 지금은 한식집+커피샵 이지만, 예전에는 박정희가 술처먹으러 다니던 한국의 양대 요정 아니던가.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옷을 입고, 말을 타고 여기에 술 마시러 다녔다고 한다. 술 먹고는 일본군가를 불러 제꼈다는 그곳이다.
이 삼청각을 내려다 보는 영감님들 입에서는
부러움에 겨운 똑같은 소리가 나왔다.
'옛날에 저기서 술 마시면 맛있었겠네~', '저기서 시바스리갈, 엄청 마셨겠구먼~'
어쨌거나 삼청각은 지금도 강북에서 제일 비싼 커피샵이다. 이곳의 커피 한잔에 9천원인데, 이 곳은 주차도장을 1시간밖에 안 찍어주니까, 결국 시간당 6천원의 주차비를 내야 한다. 버스편이 없고, 지나가는 택시도 없어서, 뚜벅이들은 가기 어렵다. 한식당은 가격에 비해 별로 맛이 없다. 워낙 뽀대가 나니까 외국인 접대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맛은 없다는것이 대부분의 중평이다.
햇볕 좋을때, 삼청각 커피샵의 테라스에서 커피 마시면 죽인다. 커피샵 외부 전경과 분위기로는 아마도 서울에서 최고라고(낮에만)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여기 데리고 가서 헬렐레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요새는 와인바도 운영한다.
말바위쉼터의 입장객 사무실이다. 여기 부스에서 입장 예약확인하고, 번호표를 받아 목에 걸고 들어간다.
말바위 쉼터에 있는 소나무. 소나무를 보호하려고 테라스에 구멍을 내서 이렇게 해 놓았다.
북악산이다.
북악산 산길의 성벽. 최근에 복원한탓에 하얀 화강암이 눈부시다.
말바위 쉼터의 사무소. 여기 계단을 통과해서 작은 문을 지나야 등산로로 들어갈 수 있다. 여기 전망도 무척 좋다.
숙정문앞. 오렌지색 상의를 입은 사람이 성곽안내사이다.
숙정문앞 성벽. 쌓은 시대가 달라서 성벽돌의 모양도 각각 다르다.
촛대바위 정상. 맨 위는 초를 꽂는곳이 아니고, 일제가 쇠말뚝을 박아놓았던 곳인데, 쇠말뚝을 뽑고나서 그들의 만행을 잊지 말자는 차원에서 표시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북악산 정상까지 이어진 성벽.
북악산 능선의 진달래.
오른쪽 성벽돌은 조선 태조때 쌓은 것이고, 왼편의 돌은 숙종때 쌓은 것이다. 돌 쌓은것만 보아도 시대를 구분할 수 있다.
오른편의 돌은 숙종때 쌓은 것이고, 왼편의 돌은 최근에 쌓은 것이다.요새 기술이 더 안좋은 것 같다.
숙종때 쌓은 성벽이 가장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과 견고함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 중기의 축성기술이 상당하다.
성벽과 철책 사이로 가는 등산길. 저 철책이 걷힐 그날은 언제일까.
능선에 핀 목련.
북악산 성벽은 각 지방에서 보낸 돌과 노동력으로 축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각 지역에서 책임지고 쌓은 곳에, 이렇게 쌓은 사람과 지역이름과 날짜를 적어놓았다. 만약 이 성벽이 무너지거나 파괴될 경우, 해당 지역에서 자재와 노동력을 동원해서 복구하는 시스템이었다는 것이다. 요새 말로 하면 제조책임자와 원산지 표기를 한 셈이다.
일본 성곽에도 돌 마다 이런 지역별 표기가 되어 있다.
북악산의 원래 이름은 백악산이다. 그런데 용산에 있는 남산과 댓구를 이루기 위해서, 백악을 북악이라 고쳤다고 한다.
북악산 정상. 저 바위가 정상에 해당한다.
북악산 정상 바위에서 내려다 본 북악산 정상 마루. 정면 12시방향으로 내려가면 청와대다.
북악산 정상에서 본 인왕산.
창의문쪽 방면에 있는 돌고래쉼터의 돌고래 바위. 돌고래 같이 생겼다는데...글쎄...
창의문 성문 천정에 그려져 있는 닭. 다른말로 봉황이라 부르던데, 아무리 봐도 닭으로 보였다.
현재 창의문이라고 불리는 이 성문은, 한때 서울사람들에게 '자하문'으로 불렸다. 현재도 자하문이라고 해야 아는 사람이 더 많다. 나도 창의문과 자하문이 같은 성문이라는것을 오늘 처음 알았으니 말이다.
창의문에서 적선동 방향으로 본 성문밖 풍경. 현재 공원이 되어 있다.
창의문 전경. 예전에 김신조 부대가 청와대 공격했을때, 이 앞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다고 한다.
격전이 벌어졌던 곳에는 목련꽃이 피고.... 뒤에 동상은 당시에 경찰서장인데, 이 자리에서 전투하다가 순직했다고 한다. 경무관으로 승진된 그는, 현재 이 곳에서 동상이 되어 서 있다.
자하문 앞의 목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