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건널 때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면, 미래에서 시간을 통과해서 날아오는 로봇이
실오라기 하나 없이 홀랑벗고 도착하는 유명한 씬이 나온다.
시간의 벽을 통과하려면 생체조직이 아니면 안되나보다.
(얼마전에 금니를 하나 박은 나는, 도착할때 이가 빠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죽어 다음생으로 떠날때도 그렇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때 가지고 나온 것 이외에 갖고 가는것은
이번생에서의 기억과, 이리저리 엮이고 얽힌 인연과, 카르마를 가지고 가게 된다.

도판이나 무술판 사람들은 흔히 '진신 공력은 갖고 간다'는 말을 하곤 했다.
존경하는 정광현선생님이 그런 얘길 해 주셨는데, 진신공력은 다음생에도 갖고 간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이 말을 생각해 보곤 했는데, 무술에서의 깨달음은 아라야식에 새겨지는 것이어서,
어쩌면 다음생에 갖고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적이 있다.
그리고 무술 천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전생에서 공부한 것을 가지고 온 것일 것이다.

삶의 의문을 풀지 못한 사람들은 스님이 되기도 한다.
발심을 하고 스님이 되면 새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속명과 속세나이를 잊고 쓰지 않는것이 상식이다.
스님들을 존경하는 것은, 스님 개인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그의 스승인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존경이 우선 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어린 스님에게도 웬만하면 반말하지 않고, 존경의 표시를 하는거다.
물론 목사님이나 신부님에 대한 것 역시, 예수님에 대한 존경표시다.
가끔 이런것을 혼동해서, 속인들의 예우가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목사님이나 스님들이 가끔 있긴 하다.

지금껏 만나본 스님들은 일반인보다 삶 자체에 대한 탐구가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풀어야 할 카르마, 業이 일반인보다 많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출가하면서까지 그것을 간절히 해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스님이 스님 다우면 되는거고, 무술하는 사람이 무술인 다우면 되는게다.
스님이 속인같고, 무술인이 양아치 같으면 좀 문제가 된다.
武道도 일종의 道이고, 공부다.
그리고 무도공부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는다.

말로는 갖은 점잔을 다 떨면서, 뒤에서는 거짓말 생산 공장이나 하고, 남을 비방하고 사기치기에 여념이 없는 무술지도자,
그런 인간이 양아치와 무엇이 다르랴.
양아치도 양아치의 道가 있는법인데, 양아치같은 무술인은 양아치만도 못하다.
양아치는 자신이 양아치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살지만, 위선자 무술인은 표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을 성경에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그랬다.
겉으로는 깨끗하게 보이지만, 그 속은 썩고 구더기와 벌레가 득실거리는 것이다.

작년 3월에 보드가야 마하보디대탑에 가서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기도 할때,
며칠간 기도끝에, 내가 떠나기전날 부처님은 어떤 메시지를 주셨다.
세상 모든 일과 사람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치를 깨닫고 나니, 세상이 편해졌다.

스님이 양아치처럼 언행을 하고, 무술가가 양아치처럼 놀때에도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겠다.
그리고 인과법칙에 의한 카르마는, 내가 관여할 것이 아니고, 그저 바라보아야 해야만 할 것이다.
남의 언행에 굳이 관여해서, 그의 업보에 내가 관계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내가 투명해지면, 그가 한 말과 행동은 다시 그에게 돌아갈 것이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남을 중상모략하겠지만서도,
보고 있자니 딱하기 그지없다.
부처님이 자비로운 것 같아도,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과의 법은 엄정하기 그지 없고,
하늘의 그물은 성긴것 같아도 악인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는 법이다.
저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악한 마음의 불이 자신의 몸을 훨훨 태우고 있건만,
정작 당사자들은 모르고 있으니... 참 딱하다.

나는 '나' 라는 옷을 입고, 이 세상을 건너는 중이다.
내 몸은 이번 생을 건너는 다리다.

평생 양아치들과 상대하지 않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 좋은 말만 하고 살고 싶다.
맛없는 커피를 마시기에는 인생은 짧은 것이듯이,
나쁜 사람들을 만나고, 악한 말을 듣기에는 인생은 길지 않다.
남은 인생, 맛있는 맥주와 맛있는 커피만 마시면서, 좋은 사람들과 웃다 가면 좋겠다.

by 한도사 | 2008/03/03 15:53 | | 트랙백 | 덧글(5)

Commented by sharkman at 2008/03/03 16:44
한도사가 아직도 강을 건너면서 업었던 여인네에 집착하는군.
Commented by 한도사 at 2008/03/03 16:52
하긴... '무술은 최후의 마장'이라는 말도 있긴 해. 깨달음을 얻기전에 최후이자 가장 강력한 마장이라고 하더군. 자네는 벌써 득도한것 같으이.
WoW에서 젊은애들이 너를 '샤크맨 선생님'이라고 부르더라. 어찌나 웃겼던지...
Commented by 페이퍼 at 2008/03/03 17:24
무술은 최후의 마장이라는 말... 왠지 좀 이해가 갈 것도 같군요. 모두가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무술 하시는 분들이 아상이 좀 강한 분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그 아상 때문에 자기자신을 더 드러내려는 성향이 생기는 것도 같고 또 그것으로 인해 무술교조화가 나타나는 것도 같고... 남자로서의 아상이 강하기 때문에 무술을 하는 건지, 아니면 무술을 하다보니 남자로서의 아상이 더 강해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깨달음의 최후의 장애는 아상이겠죠...
Commented by 푸른화염 at 2008/03/03 19:31
안녕하십니까? 처음뵙습니다. 링크 신고 합니다.
Commented by 한도사 at 2008/03/03 19:54
페이퍼 / 금강경에 보면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니라'라고 나오지요. 모든 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제상이 상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면, 당장에 여래를 본다고 합니다. 대결도, 승패도, 다 相 입니다. 알고보면 우스운 것인데, 왜 그렇게 집착하고 지저분한 거짓말들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