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19일
20년째 검도 7단인 어느 농사꾼 이야기
20년째 검도 7단인 어느 농사꾼 이야기
고동수 사범님은 용무정 선생님과 함께,
내가 대한민국 검도계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 이시다.
족보상 내 사숙이 되신다.
내 사부가 스승을 여럿 모셨는데, 그가 송성식 선생님의 제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고하신 박선생님이 역시 송성식 선생님에게서 몇가지 무술을 배우셨고, 전수증까지 받으셨으니까,
나는 故송성식 선생님의 여러 제자들에게서 키워진 셈이다.
고동수 사범님은 검객으로써의 기량이 하늘을 찔렀던 분이다.
35살에 7단이 되셨고, 나중에 부천시청 검도팀 감독까지 하셨지만,
이종림 선생의 일명 '新검부'를 비판했기 때문에, 검도계에서 매장당했다.
매장인지 순장인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이종림씨가 고사범님을 순장시켜 땅에 묻었더니, 아예 땅과 친구가 되어서 농사를 짓고 계시니 참 황당하다.
바로 그게 고사범님이다.
고사범님을 검도인으로만 아시는 분 들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고사범님의 능력은 사진으로도 평가한다.
월간 검도세계를 시작 하시면서 사진을 배우셨다는데,
최연소 7단이 되신 분 답게, 검도사진 역시 최단기간에 전문가의 경지로 올라서셨다.
일본에도 고사범님 정도의 작품을 만드는 검도사진가는 별로 없다.
요새 전문사진가라는 영역이 많이 확산되었지만, 진정한 전문사진가는 고사범님이 대표가 아닐까 싶다.
바로 검도 고단자이기 때문에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것이다.
나 역시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그런 사진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얻을 수 없었다.
동작이 일어나는것을 포착하고 셔터를 누르면, 이미 검은 포인트를 지나간 후 였었다.
그래서 고사범님에게 여쭤봤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순간포착이 가능하시냐고.
그랬더니 이 양반, 검도 사진촬영에는 入神의 경지에 다다르신 거 였었다.
둘이 검을 대고 정지해서 서 있는것만 보아도, 누가 어떻게 어딜 공격할지 뻔히 보이기 때문에,
동작이 일어나기전에 포커스를 잡고, 이미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는것이었다.
거의 예외가 없었다고 했다.
SLR카메라는 셔터가 눌려지는 순간에 포컬프레인 셔터가 뷰파인더를 차단하기 때문에,
그리고 셔터 속도가 리얼타임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차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고사범님은 이런 문제를 예지로 해결하신 것 이었다.
가히 신의 경지다.
축구로 따지자면, 누가 어느 지점에서 슛을 날려서 골인이 될지 3분전에 미리 알고,
그 장소로 이동해서 카메라 고정시켜놓고 기다려 찍은 셈이다.
그전에 고사범님의 검도사진전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일본의 검도잡지 '검도일본'에 실리는 사진들도 이것보다 낫지는 않았다.
고사범님이 나의 사숙이어서 내가 과대평가 하는것이 아니다.
花無十日紅 人不白日好 이라고 했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100일 좋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성대 검도인맥이 무림에 혈겁을 십수년째 몰아쳤지만,
성균관대 신검부가 설마 백년 가겠는가.
꽃피고 새우는 호시절이 되면, 고사범님이 검도계를 위해 큰일을 하실때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사족) 내가 고사범님을 좋아하는 이유중에 하나.
마흔이 훌쩍 넘어서 십수년 연하의 부인을 만나 결혼하셨다.
매우...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일 이다. ^^
고동수 사범님은 용무정 선생님과 함께,
내가 대한민국 검도계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 이시다.
족보상 내 사숙이 되신다.
내 사부가 스승을 여럿 모셨는데, 그가 송성식 선생님의 제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고하신 박선생님이 역시 송성식 선생님에게서 몇가지 무술을 배우셨고, 전수증까지 받으셨으니까,
나는 故송성식 선생님의 여러 제자들에게서 키워진 셈이다.
고동수 사범님은 검객으로써의 기량이 하늘을 찔렀던 분이다.
35살에 7단이 되셨고, 나중에 부천시청 검도팀 감독까지 하셨지만,
이종림 선생의 일명 '新검부'를 비판했기 때문에, 검도계에서 매장당했다.
매장인지 순장인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이종림씨가 고사범님을 순장시켜 땅에 묻었더니, 아예 땅과 친구가 되어서 농사를 짓고 계시니 참 황당하다.
바로 그게 고사범님이다.
고사범님을 검도인으로만 아시는 분 들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고사범님의 능력은 사진으로도 평가한다.
월간 검도세계를 시작 하시면서 사진을 배우셨다는데,
최연소 7단이 되신 분 답게, 검도사진 역시 최단기간에 전문가의 경지로 올라서셨다.
일본에도 고사범님 정도의 작품을 만드는 검도사진가는 별로 없다.
요새 전문사진가라는 영역이 많이 확산되었지만, 진정한 전문사진가는 고사범님이 대표가 아닐까 싶다.
바로 검도 고단자이기 때문에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것이다.
나 역시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그런 사진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얻을 수 없었다.
동작이 일어나는것을 포착하고 셔터를 누르면, 이미 검은 포인트를 지나간 후 였었다.
그래서 고사범님에게 여쭤봤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순간포착이 가능하시냐고.
그랬더니 이 양반, 검도 사진촬영에는 入神의 경지에 다다르신 거 였었다.
둘이 검을 대고 정지해서 서 있는것만 보아도, 누가 어떻게 어딜 공격할지 뻔히 보이기 때문에,
동작이 일어나기전에 포커스를 잡고, 이미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는것이었다.
거의 예외가 없었다고 했다.
SLR카메라는 셔터가 눌려지는 순간에 포컬프레인 셔터가 뷰파인더를 차단하기 때문에,
그리고 셔터 속도가 리얼타임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차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고사범님은 이런 문제를 예지로 해결하신 것 이었다.
가히 신의 경지다.
축구로 따지자면, 누가 어느 지점에서 슛을 날려서 골인이 될지 3분전에 미리 알고,
그 장소로 이동해서 카메라 고정시켜놓고 기다려 찍은 셈이다.
그전에 고사범님의 검도사진전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일본의 검도잡지 '검도일본'에 실리는 사진들도 이것보다 낫지는 않았다.
고사범님이 나의 사숙이어서 내가 과대평가 하는것이 아니다.
花無十日紅 人不白日好 이라고 했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100일 좋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성대 검도인맥이 무림에 혈겁을 십수년째 몰아쳤지만,
성균관대 신검부가 설마 백년 가겠는가.
꽃피고 새우는 호시절이 되면, 고사범님이 검도계를 위해 큰일을 하실때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사족) 내가 고사범님을 좋아하는 이유중에 하나.
마흔이 훌쩍 넘어서 십수년 연하의 부인을 만나 결혼하셨다.
매우...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일 이다. ^^
# by | 2008/04/19 12:47 | 武 | 트랙백 | 덧글(7)








말년에 서정학 선생님을 뵈오면, 마치 늙은 사자앞에 앉아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느낌을 받은 무도인이라면, 故김일 선생님과 이왕표선생님 정도랄까요. 이런 분들을 만나면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노랫가사가 떠오르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