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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통무예 추적기 (2)

- 나의 전통무예 추적기 (2)



故박성권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에 만주에서 태어나셔서, 만주 건국대학을 다니신적이 있고, 해방전에 남한으로 오셨다고 했다. 덕분에 중국어/일본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하셨고, 중국어 일본어 원전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셨다. 남한에서는 경찰관으로 평생 근무하시고 정년퇴직을 하셨고, 퇴임후에는 성동경찰서의 무도지도사범을 역임하셨다. 검도, 태권도, 합기도, 기천, 요가 등등을 하셨다 들었다. 경찰에 입사할때부터 출신이 무도경관이셨던 듯 했다.
이 양반은 부인이 봉제공장 사업을 크게 하셔서 집안이 부유했는데, 경찰관의 봉급은 집에 한번도 안 갖다주고 오롯이 자신의 무술연구를 위해 쓰셨다고, 초상 치른후에 사모님이 말씀해 주셨다. 사모님은 평생 남편이 월급봉투 갖다 주는걸 받아본적이 없노라 하셨다.

박성권 선생님이 경찰에 투신한 이유는, 경찰 정보과 형사를 하면서 경찰정보망을 이용하여 전국의 무술인들을 찾고 접촉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후일 말씀하셨다. 박선생님에게는 전통무술을 찾는 것이 평생의 사업이었던 것이다.
나는 경찰과 인연이 많은가 보다. 우리 할아버지가 6.25때 경찰관 신분으로 전쟁에 나가셨다 들었고, 나의 무술 스승님들도 경찰 출신이 한두명이 아니었으니. 사실 나의 사주에는 경찰/군인이 천직이라 나온다고도 들었다. 내 사주가 경찰인데, 경찰을 안해서 인생이 이렇게 꼬였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검도사부님도 경찰이었다. 대학 졸업후 무도경찰로 경찰에 입사해서, 경찰특공대에도 있었고, 마약수사쪽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다. 후일 언더커버로 일본에서 몇 년간 근무하셨고, 나중에는 某국제기구에 들어가 프랑스 리용에서 반년간 훈련받고 해외 근무지로 배치되셨다. 경찰 여러분들은 리용에 뭐가 있는지 잘 아실 것이다. 그는 십년간의 근무후에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남으셨고, 지금은 국적이 바뀌어 북유럽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잘 사신다 들었다.

나는 나의 검도사부님의 소개로 박성권 선생님을 뵙게 되었는데, 전통무술을 찾아다니는 나의 취미와 인생 황혼기에 젊은 제자 하나 받고 싶었던 박선생님의 Needs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분은 무도경찰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어서, 서로 선후배로 대접하던 사이였다.

(To be continue...)